우리의 고양이 이야기 프롤로그
2020년 늦은 봄,
남편과 나에게 절대 잊지 못할 슬픈 일이 벌어졌고 남편은 쉽게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다. 남자가 이렇게도 자주, 이렇게나 많이 울 수 있는가? 그의 눈엔 매 순간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를 토닥여주다가 둘 다 펑펑 우는 것이 매일 반복되던 일상이었다.
2020년, 코로나 사태가 시작된 전 세계가 혼란과 불행으로 가득했고 락다운이 시작되었고 사람들끼리 서로 거리를 두어야 했던 시기였기에 집안에 갇힌 채 더 지독한 가슴앓이를 했다. 어느덧 여름이 가까워오면서 락다운이 제한적으로 풀렸고 평소 관심을 두고 있었던 동물보호소에서 자원봉사자를 간절하게 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남편은 원래 외출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던 사람이다. 일명 '집돌이'. 취미활동도 무조건 집에서 그것도 개인적으로, 퇴근 후엔 본인 취미활동에 열중하느라 나와 대화도 잘 하지 않았고 락다운 전까지 일방적으로 조르고 설득해야 밖으로 나가던 사람이었다. 가족모임이나 친구모임도 제한적으로 참석하는 그의 성향에 수년간 답답함을 느꼈다.
그러던 그가 락다운을 겪고 집에서만 근무하는 일상을 보내며 답답한 와중에 슬픈 일까지 겪었다(결국 그의 벽을 부수는 긍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동물보호소 자원봉사자 구인 소식을 전하면서 내가 몇 년간 건의했던 동물보호소 주말 정기봉사활동을 하자는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힘든 상황 속에 정말 단비 같은 남편의 제안. 바로 신청서를 보내고 간단한 인터뷰를 마쳤다. 돌아오는 토요일에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다음 일요일부터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오리엔테이션을 하던 날, 관리자의 안내로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설명을 듣는데 남편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그 이야기는 나중에 쓰고자 한다). 고양이들이 머무는 장소 초입의 복도, 커다랗게 설치된 유리창 안 구석구석 잘 보이는 고양이들의 공간, 정말 잘 꾸며진 고양이들의 공간. 고양이들은 자신의 처지를 아는지 조금 무거운 분위기였고 복도의 분주한 사람들의 말소리와 인기척에 구석에서 경계하거나 벽을 보고 외면하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남편의 눈물이 손수건으로 훔쳐야 할 만큼 흘러내리기 시작했을 때, 순간 한 마리의 고양이가 공간 안 창문에 설치된 난간까지 뛰어올라 나와 남편을 보고 유리창을 긁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고양이의 행동을 미쳐보지 못한 남편에게 급하게 상황을 알렸고 우리는 깜짝 놀랐다. 갈색의 중장모종으로 예쁜 얼굴을 가진 고양이, 창문에 가까이 다가오라는 듯 창문을 긁는 모습. 곧 다른 예비 봉사자들과 관리자의 시선을 받았고 모두가 웃음 지었다. 남편도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코를 훌쩍이며 미소 지었다.
관리자는 보호소에서 가장 발랄하고 친절한 고양이라고 했다. 보호소에 장기탁묘 및 호텔링을 맞긴 주인이 2년간 비용지불도 없이 연락두절을 해버려서 법적인 소송에 걸려있으며 이 고양이를 포함 총 13마리가 2년이 넘게 보호소에서 지내는 중이라고 했다. 소유권 문제로 좋은 가정에 임시탁묘도 보낼 수도 없다고 했다. 사실, 보호소에 고양이 입양을 원하는 사람들이 방문하면 이 13마리의 고양이들이 예쁘다며 이들을 입양을 할 수 있는지 가장 먼저 문의한다고 했다.
주인의 연락두절로 인해 중성화가 되지 않은 채 맡겨진 2마리의 고양이를 보호소의 결정으로 수술을 시킬 수도 없고, 만약 큰 병에 걸려 수술이 필요할 경우에도 소송 중에는 복잡해질 일이라고 했다. 창문 안 보이는 공간은 컸고 잘 꾸며져 있었지만 메인쿤, 노르웨이 숲 등으로 추정되는 모두 털이 길고 몸집이 큰 13마리가 함께 지내니 비좁아 보이기도 했다. 중성화가 되지 않은 2마리의 암고양이도 있어서 시끄럽고 한정된 공간 속의 그들의 삶은 답답해 보였다.
관리자의 설명을 들으며 유리창 앞의 고양이를 바라보다 보니 이 고양이가 가장 몸집이 작은 듯했다. 남편과 내가 눈을 깜박이며 인사하니 반갑게 화답했다. 유리창 사이에 얼굴을 가까이 댄 눈물 젖은 남편의 눈 쪽을 고양이는 계속 발로 두드렸다. 한정된 시간 관계로 바로 다른 장소로 옮겨야 했고 70분 정도의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참석자 모두 어느 동물 구역에서 봉사활동을 할 것인지 정했다.
잠깐 만났던 고양이가 눈에 밟혔던 우리는 고양이 구역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로 했다. 구역의 모든 방을 청소하고, 세탁물들을 모아 세탁하고, 식기를 세척하고 식사를 준비해 배분하고, 고양이들과 놀아주는 역할이 배정되었다. 주 1회는 의무적으로 참여하되, 8시간 혹은 4시간으로 시간을 조정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도나우강 타워에서 내려다 본 비엔나의 전경 |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으며 오랜만에 대화의 꽃을 피웠다. 그곳을 둘러보며 가슴이 뭉클했던 감정, 갑작스러운 고양이의 인사에 행복했던 순간을 나누었다. 덕분에 한동안 안고 있었던 슬픈 일과 코로나 사태와 락다운 등으로 처음 겪은 충격과 공포, 답답함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얼마나 최선을 다해 봉사활동을 할 것인지, 누가 더 열심히 하는지 내기하자는 사뭇 진지한 대화, 다 큰 어른임에도 철부지 같은 우리의 모습에 활짝 웃을 수 있었다.
그날 밤, 잘 시간에 되어 침대에 누운 우리는 여전히 얼마나 설레는지 이야기하느라 쉽게 잠들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