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셋, 윤상의 음악과 나의 초등학교 시절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 라디오를 듣는 것에 눈을 뜨게 되었다.
중학교에 진학할 준비를 하기 위해 주 5일 학원공부에 더해 매주 토요일 2시간씩 과외를 받게 되었다. 해야 할 숙제 및 예습, 복습거리가 많아졌다. 아버지는 본격적으로 영어공부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영어회화가 담겨있는 카세트테이프 세트와 작은 오디오를 사주었다.
당시 AFKN(현재 AFN)- American Forces Korean Network를 들을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목적은 영어공부였고 다른 과목공부를 할 때는 원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을 수 있었다. 백색소음처럼 라디오를 켜놓고 공부하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잠들기 전까지 라디오를 들으며 이런저런 공상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어느 날, 라디오 주파수 다이얼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어떤 음악에 심장이 철렁했다.
후렴구였고 노래가 다 끝나기도 전에 광고가 시작되어 어떤 가수의 노래인지 알 수 없었다. 단 몇 분의 짧은 순간이었는데 멜로디가 참 좋았다. 신비했다.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고작 13년을 사는 어린아이의 삶에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아직 컴퓨터가 대중적으로 각 가정에 보급되지 않았었고 학교수업에서 여전히 MS-DOS를 배우던 시절이었다.
누구의 노래인지 인터넷으로 검색할 수도, 어린 내 힘으론 도저히 알아낼 수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그 노래를 들었던 라디오 방송국을 기억해 두고 틈만 나면 그곳에 주파수를 맞췄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어떤 음악이 나의 귀를 사로잡았다. 후렴구만 희미하게 기억해서 확신할 수 없었지만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목소리가 같았다. 다행히 노래시작 전에 라디오 DJ가 소개하던 가수의 이름을 흘려듣지 않았었다. 중반부가 되자 나는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그 노래가 맞았다. 그때의 신비스럽고 몽환적인 슬픔의 분위기가 다시 내 가슴속에 몰려왔다.
겨우 초등학교 6학년 생인 주제에 갑자기 어른이 된 것처럼 왠지 모를 감정에 젖어들었다. 그리고 노트에 가수의 이름을 적었다.
'윤상'
6학년이 된 우리들은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이면 나름 어른스러운 대화를 나누곤 했다. 사춘기의 초입에 든 우리는 혼란스럽고 아직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재잘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이터울이 꽤 나는 언니 두 명이 있는 친구가 중학생이 되는 것을 앞두고 언니들과 대화하고 배운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 애는 5학년 때부터 왠지 어른스러었었다.
우연히 음악이야기가 나왔다. 언니들이 즐겨 듣는 노래들은 슬픈 느낌을 주는 것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들은 어떤 음악을 듣는지 물어봤다.
"혹시 '윤상'이라는 가수 아니?" 나는 그 친구에게 물었다.
"어? 왠지 들어본 거 같아, 혹시 음악테이프 가지고 있어?"
"아니, 그냥 라디오에서 들었어. 너무 좋아서 가수이름만 적어놨어."
"우리 언니들이 가지고 있는 테이프들 중에 있을 거야, 누군지 알 것 같아. 우리 언니한테 물어볼게."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나는 뭔가 설레는 마음으로 주말을 보냈다. 그리고 월요일이 되었다.
"ㅇㅇ아, 이 가수 맞지? 너 주려고 가져왔어."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어? 나 이 가수 얼굴은 몰라 그냥 이름만 알아, 그런데 왜 이걸 나한테 주는 거야? 언니한테 혼나지 않아?"
"괜찮아! 언니들이 이 가수 테이프 많다고 너 주라고 했어, 초등학생이 벌써 이런 음악을 좋아하냐고 참 어른스럽다고 하면서 재미있어하던데? 언니가 너 주래, 거의 새것 같은 거라고 맘껏 들으래 테이프 늘어질 때까지."
"고마워! 언니에게 고맙다고 말해줘"
나는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친구와 언니들에게 정말 고마웠다.
친구에게서 받은 카세트테이프 표지에는 청색 셔츠를 입은 뭔가 쓸쓸한 표정을 지은 남자의 얼굴 크게 나와 있었다.
초등학생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윤상의 앨범 커버 |
아! 윤상의 얼굴이구나! 당시 어린 내 눈엔 잘생긴 것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었지만 왠지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윤상의 음악은 나의 모든 것이 되었다.
이곳에 모든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는 없지만
당신의 음악이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까지 살아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