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로 전락해 버린 어떤 세상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참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 팬더믹으로 전 세계에서 인터넷(온라인)과 관련한 산업이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속도와 규모로 성장했다고 한다. 인터넷은 누가 사용하는가? 바로 사람이다. 3년간 락다운이 지속되면서 사람들은 거의 반강제적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었다. 실제적인 인간관계의 교류도 막힌 채, 우리는 고립되어 있어야 했다.
인간의 본성이 그러하듯 우리는 사회적인 동물이다. 그리고 매 순간 살아있음을 느껴야 한다. 인터넷이 발달 할수록 온라인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특히 팬더믹의 시작과 동시에 거의 모든 사람이 인터넷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메타버스(metaverse)'가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OpenAI의 ChatGPT를 필두로 인공지능 분야도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것' 하나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처음 발을 들였던 10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인터넷과 한시도 떨어져 살 수 없는 나인데, 요즘 넘쳐나는 온갖 것들을 보면 너무 화가 치솟은 나머지 헛웃음이 나온다. 내 나이 곧 40세, 인간의 평균 수명을 80세라고 보면 딱 절반에 들어선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에서, 감히 나는 이 세상을 천태만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심함과 실망을 도저히 감출 수가 없다.
인터넷에선 '체면'이 필요 없는 것일까? 가장 눈에 띄는 것 하나를 꼽으라면, 일부 내 또래부터 연령이 높은 사람들이(이들은 꼭 나이를 가늠할 수 있도록 힌트를 준다) 지나친 자기애와 오만함을 드러내는 것을 수치스러워하지 않으며, 한국인 종족 특성이라는 오지랖을 기반으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며 사사건건 가르치려 들려는 고압적인 행태를 내보이고 있다.
유행이라면 무조건 따라 하는 사람들, 그리고 우두머리가 되길 꿈꾸는 이들.
얼마 전부터 하루의 '빼놓을 수 없는 일과'처럼 들여다보는 것이 있다. 처음엔 오랜 애정을 가지고 있던 것과의 '어쩔 수 없던 작별'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공개된 장소에서, '어떤 사안'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용기에 감탄했고 응원했다. 정말 순수하게 동질감과 감사의 마음으로 종종 그곳에 방문해, 조용히 사람들의 의견을 마음에 소중히 담았다.
몇 달이 흘렀다. 가장 먼저 목소리를 냈던 사람들 대부분이 다른 곳으로 떠났다. 그들의 마지막 글에는 왜 떠나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서술했지만, 어디로 떠나는지에 대한 세부 내용(주소)은 적혀있지 않았다. 나도 그렇게 떠났다. 하지만 '미련'이 남았다는 이유로 자꾸 뒤를 돌아보던 나는, 뒤늦게서야 본인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생동감이 넘치던 강은 갑작스러운 지각변동으로 물줄기가 막혀 우물이 되어버렸다. 점점 우물의 물이 썩어가고 있는 것이 눈에 훤히 보인다. 그 와중에 소리가 요란한 신종 생명체들이 끝없이 번식하고 세력과 영역을 넓히기 위해 욍욍거리며 생사의 결투를 벌이는 중이다. 변해버린 모습에 충격을 받고 슬펐던 감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로 전락해 버렸다.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어느 숲길 |
애정이 어린 마음은 곧 비웃음으로 변했다. 어떤 수식어도 그들에게는 사치스럽다.
우리가 길가의 개미 떼를 보는 것처럼, 세상을 창조했다는 절대자의 시선에서 우리도 개미 떼처럼 작게 보일 것이다. 그중 하나인 나는 그저 움직이는, 특징 없는 미세한 하나의 먼지와도 같을 것이다. 언제나 겸손과 감사함으로 삶을 꾸려가야 하는 것도 모자랄 판에, 내가 소속되어 있는 사회를 꼬집어 비판하고 있다. 나 역시 오만함으로 선을 긋고 오지랖을 부리는 것일까?
진정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묵묵히 갈 길을 간다. 끊임없는 자아 성찰과 자기비판을 통해 자신의 분수를 안다.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인내하고 노력하며, 섣불리 남들 앞에 나서지 않는다. 소위 "누구나 OOO 할 수 있다!" 열풍에 합세한 이들은 인터넷에 쓰레기만 양산하고 있다. 화려한 수식어와 껍데기로 치장해 자화자찬하지만, 그 실체는 텅 비어 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것일까? 스스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고는 있을까?
인간이 문자와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철학이 생겨났다. 철학은 세상과 삶에 대한 근본원리를 알고자 하는 것으로 존재와 가치 그리고 이성, 인식과 비판 등에서 출발 한 아주 오래된 학문이다. 동서양의 철학이 다르다지만 큰 맥락에서 보면 유사한 점이 많다. 사람은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생각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은 커다란 고통이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생각이라는 '고통'은 인류사회를 끊임없이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다. 초등학생 수준의 위인전집과 역사책만 봐도 이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인류의 기원부터 우리보다 먼저 그 짐을 지고, 기꺼이 희생하며 세상을 다져온 현인(賢人)들이 있다. 그런데 현시대에 갖가지 혜택을 누리는 우리, 왜 감사할 줄 모르는가? 왜 당장의 자극에 현혹되어 여기저기 더럽히고 다니는가? 당신의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진짜 인간이라면, 진정으로 사고(思考)한다면 부끄러움이 무엇인지도 알 것이다.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행동을 이제 그만 멈추길 바란다.